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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元曉,617~686)
작성일 : 2017-07-15     조회 : 3148

원효 [元曉, 617~686.3.30]



신라의 승려로 당나라로 가는 유학길 중 간밤에 마신 물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대오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평생 불교사상의 융합과 그 실천에 힘썼으며 한국 불교사상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받는다. 저서에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등 다수가 전해진다.

별칭 아명 설서당 ·설신당, 소성거사 ·복성거사
활동분야 종교
주요저서 《무애가》《대혜도경종요》《법화경종요》


속성 설(薛), 법명 원효, 아명 서당(誓幢)·신당(新幢)이다. 압량(押梁:慶山郡)에서 태어났다. 설총(薛聰)의 아버지이다. 648년(진덕여왕2) 황룡사(皇龍寺)에서 승려가 되어 수도에 정진하였다. 가산을 불문에 희사,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고 자기가 태어난 집터에는 사라사(沙羅寺)를 세웠다. 650년(진덕여왕 4)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는데 중도에 고구려 순찰대에 붙잡혀 실패하였다.

661년 의상과 다시 유학길을 떠나 당항성(唐項城:南陽)에 이르러 한 고총(古塚)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마신 물이, 날이 새어서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음을 대오(大悟)하고 그냥 돌아왔다. 그후 분황사(芬皇寺)에서 독자적으로 통불교(通佛敎:元曉宗 ·芬皇宗 ·海東宗 등으로도 불린다)를 제창,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하루는 거리에 나가 “누가 내게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는가? 내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라고 노래한 것이 태종무열왕에게 전해져 요석공주(瑤石公主)와 잠자리를 같이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설총이 태어났다. 이 사실을 스스로 파계(破戒)로 단정, 승복을 벗고 소성거사(小性居士) ·복성거사(卜性居士)라 자칭, 《무애가(無 歌)》를 지어 부르며 군중 속에 퍼뜨리자 불교가 민중 속에 파고들었다.

또 당나라에서 들여온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을 왕과 고승(高僧)들 앞에서 강론, 존경을 받았다. 그후 참선과 저술로 만년을 보내다가 70세에 혈사(穴寺)에서 입적하였다. 뒤에 고려 숙종이 대성화정국사(大聖和靜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불교사상의 융합과 그 실천에 힘쓴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자이며, 한국의 불교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가장 위대한 고승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다.

저서에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 《화엄경소(華嚴經疏)》 《대열반경종요(大涅槃經宗要)》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 《대무량수경종요(大無量壽經宗要)》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 《미륵상생경종요(彌勒上生經宗要)》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보살영락본업경소(菩薩瓔珞本業經疏)》 《범강경보살(梵綱經菩薩)》 《계본사기(戒本私記)》 《보살계본지범요기(菩薩戒本持犯要記)》 《중변분별론소(中邊分別論疏)》 《판량비론(判量比論)》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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