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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金宗直)
작성일 : 2017-07-15     조회 : 2512

김종직 [金宗直, 1431~1492]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性理學者) ·문신.

본관 선산
호 점필재
별칭 자 계온 ·효관, 시호 문충
활동분야 정치, 학문
출생지 경남 밀양
주요저서 《유두유록》 《청구풍아》 《당후일기》


본관 선산(善山). 자 계온(季) ·효관(孝盥). 호 점필재(佔畢齋). 시호 문충(文忠). 경남 밀양 출생. 1453년(단종1) 진사가 되고 1459년(세조5)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으며, 정자(正字) ·교리(校理) ·감찰(監察) ·경상도병마평사(慶尙道兵馬評事)를 지냈다. 성종(成宗) 초에 경연관(經筵官)이 되고, 함양군수 ·참교(參校) ·선산부사(善山府使)를 거쳐 응교(應敎)가 되어 다시 경연에 나갔다. 도승지 ·이조참판 ·경연동지사(經筵同知事) ·한성부윤 ·공조참판(工曹參判) ·형조판서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에까지 이르렀다. 문장과 경술(經術)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조(宗祖)가 되었고, 문하생으로는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김일손(金馹孫) ·유호인(兪好仁) ·남효온(南孝溫) 등이 있다. 성종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자기의 문인들을 관직에 많이 등용시켰으므로 훈구파(勳舊派)와의 반목과 대립이 심하였다.

그가 죽은 후인 1498년(연산군4) 그가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관(史官)인 김일손이 사초(史草)에 적어 넣은 것이 원인이 되어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다. 이미 죽은 그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으며, 그의 문집이 모두 소각되고, 김일손 ·권오복(權五福) 등 많은 제자가 죽음을 당하였다. 중종(中宗)이 즉위하자 그 죄가 풀리고 숙종(肅宗) 때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밀양의 예림서원(禮林書院), 구미의 금오서원(金烏書院), 함양의 백연서원(栢淵書院), 금산(金山)의 경렴서원(景濂書院), 개령(開寧)의 덕림서원(德林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점필재집(佔畢齋集)》, 저서에 《유두유록(流頭遊錄)》 《청구풍아(靑丘風雅)》 《당후일기(堂後日記)》 등이 있고, 편서에 《동문수(東文粹)》 《일선지(一善誌)》 《이준록(彛尊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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